미국 박사과정 1달차 — 새로운 연구실에서 살아남는 법

PhD in US
PhD Journey
새로운 연구실에 빠르게 적응하는 법, 논문을 읽는 법, 로테이션을 활용하는 법 — 미국 박사과정 첫 한 달 동안 정리해본 세 가지.
Published

16 Sep 2026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한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경험했지만,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학교, 새로운 연구실,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다른 경험이었다.

첫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느낀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새로운 환경에서 얼마나 빠르게 배우고 적응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첫 달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정리해본 세 가지가 있다.

  1. 새로운 연구실에 빠르게 적응하는 법
  2. 논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3. 로테이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1. 새로운 연구실에 빠르게 적응하는 법

새로운 연구실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당연히 내가 가장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누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어떤 실험을 하는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나는 신입이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일을 알려주겠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처음부터 내가 이 연구실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Proactiveness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Proactiveness다.

새로운 환경에 들어갔을 때 “What can I do here?” 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What can I contribute here?”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연구실은 최근 New York City에서 Dallas로 일부 그룹이 이동해 온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연구실의 여러 부분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연구가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이나 장비, 자재들을 정리하고 옮기는 일도 필요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것이 내 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연구실이 아직 완전히 functional하지 않다면, functional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작은 일들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단순히 “새로 온 학생”이 아니라 이 공간의 구성원으로서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내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특히 이미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에 들어갔다면,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계속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미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어 논문의 막바지에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존 실험을 반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Revision 과정에서 reviewer가 제기한 질문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추가 실험을 수행하면서 연구에 기여할 수도 있다.

반대로 이제 막 시작하는 프로젝트라면 상황이 다르다.

아직 hypothesis를 build-up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critical thinking을 통해 기존 아이디어의 weakness를 찾아내고 새로운 방향을 제안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맡은 일이 무엇인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다른 사람들은 무슨 연구를 하는지 관심을 갖자

같은 연구실에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사람이 각자 완전히 다른 질문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연구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research interest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와 meeting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면, 가능하면 그 사람의 연구를 먼저 찾아보고 가려고 한다.

그 사람이 어떤 논문을 썼는지, 현재 어떤 주제를 연구하고 있는지, 이전에는 어떤 연구를 했는지를 미리 알고 가는 것이다.

단순히 “What do you work on?”이라고 묻는 것보다, “I saw that you previously worked on X, and now you’re studying Y. How did you make that transition?”이라고 질문할 수 있다면 대화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연구를 미리 공부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첫인상이 된다.

3. 최대한 많은 Social에 노출되기

개인적으로 이게 가장 어렵다.

새로운 환경에서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말을 걸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박사과정에서는 결국 사람을 통해 배우는 것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나를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노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이 Elevator Pitch다.

사람들은 나에게 30분, 1시간씩 시간을 내어줄 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 사람은 누구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만의 작은 research brand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조금 재미있는 연결고리가 있다.

현재 autoantibody를 연구하는 그룹에서 일하고 있는데, 나는 어머니가 임신했을 당시 RhoGAM이라는 antibody-based treatment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이 이야기를 research interest와 연결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단순히 “I’m interested in autoantibodies.”라고 말하는 것보다, “I’m currently interested in autoantibodies, and there’s actually a personal connection—I wouldn’t be here without an antibody treatment called RhoGAM.”이라고 이야기하면 훨씬 기억에 남는다.

물론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가 모든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 수 있는 하나의 hook을 가지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4. 그렇다면 논문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새로운 연구실에 들어가면 논문을 엄청나게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그런데 첫 달에 내가 느낀 것은 논문을 많이 읽는 것보다 무엇을 읽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크게 세 단계로 생각하고 있다.

① 내가 속한 연구의 중심을 먼저 이해하기

먼저 내가 속한 연구실에서 majority를 차지하는 research theme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GATA2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연구실에 있다고 해보자.

그 안에서 내가 PD-1 marker expression에 관한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해서 곧바로 PD-1 논문만 찾아 읽는 것은 좋은 출발이 아닐 수 있다.

먼저 “Why is this lab interested in GATA2?”를 이해해야 한다.

GATA2가 어떤 biological function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질환과 연결되어 있는지, 이 연구실에서는 GATA2의 어떤 부분을 연구하고 있는지를 먼저 공부해야 한다.

내 프로젝트가 연구실의 큰 그림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② 연구실 안에서 연구가 어떻게 뻗어나가는지 보기

그다음에는 하나의 research theme에서 어떤 질문들이 파생될 수 있는지를 본다.

GATA2를 예로 들면,

  • GATA2 variant가 실제 phenotype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 GATA2 deficiency가 어떤 immune phenotype을 만드는가?
  • PD-1 이외의 biomarker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 특정 phenotype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mechanism은 무엇인가?

처럼 질문이 계속 뻗어나갈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논문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 연구에서 다음 질문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다.

③ 마지막으로 연구실 밖의 연구를 읽는다

GATA2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 연구실만이 아니다.

전 세계의 여러 연구자들이 같은 biological question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실 안에서 익숙해진 다음에는 다른 그룹들이 같은 주제를 어떻게 확장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논문을 ‘사람’ 중심으로 읽는 것이다.

논문의 제목과 Figure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연구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람은 그다음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 당시의 postdoc은 지금 어디에서 PI가 되었는가? 이 분야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연구자들은 누구인가? 서로 어떤 연구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를 따라가 보는 것이다.

10년 전에 어떤 연구실에서 postdoc으로 first author 논문을 썼던 사람이 지금은 독립적인 group leader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의 논문을 시간순으로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scientific theme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가 보인다.

논문을 이렇게 읽기 시작하면 연구 분야가 단순한 논문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과 아이디어가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network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5. 마지막으로, 로테이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미국 PhD에서 rotation은 단순히 “어떤 연구실이 좋은지 구경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아까운 시간이다.

특히 이전에 대학원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전략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경험이 없다면

가능하면 최대한 다양한 연구실을 경험하고 hands-on하게 움직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실험을 직접 해보고,

  • 내가 어떤 technique을 좋아하는지
  • 어떤 연구 질문이 재미있는지
  • 어떤 연구 환경이 나와 맞는지

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실 홈페이지나 논문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이미 대학원 경험이 있다면

반대로 이미 어느 정도 연구 경험이 있다면, rotation에서 무작정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보다는 hands-off하게 전체적인 연구 방향과 연구실의 scientific environment를 관찰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실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제는 “이 실험을 할 수 있는가?”보다 “이 연구실에서 내가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기 때문이다.

PI가 어떤 방식으로 mentorship를 하는지,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토론하는지, 프로젝트가 어떤 방식으로 발전하는지, 내가 이곳에서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마치며

미국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첫 한 달 동안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박사과정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누가 나에게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나는 이 연구실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 이 연구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가? 내가 다음에 읽어야 할 논문은 무엇인가? 이 연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려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가?

결국 첫 달에 배운 것은 연구 지식 그 자체라기보다, 연구자로서 스스로 움직이는 방법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 2달차, 3달차가 되면 지금과는 또 다른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매달 하나씩, “미국 박사과정에서 내가 새롭게 배우고 있는 것들”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다음 달에는 아마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