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9주차 — 마지막 서류 지옥의 관문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시험을 치루는지 몇 주는 지난 것 같고, 또 그리고 시계를 찬 지 몇 주나 지난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두 사건 모두 이번주에 일어난 일이라니! 심지어 사진을 정리하면서, 9주차 글감을 생각해보다가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만큼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신호인거겠지?
Day 1 — 9월 28일 (월) · Proteins 안녕!
오늘은 드디어 Proteins 과목이 끝나는 날이었다. 지난주의 감상을 살펴보면, 이 자가 얼마나 자신만만했는지 알 수 있고 충격적인 시험 난이도에 깊은 좌절감을 느낀 시험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나만 어렵다고 느낀 시험은 아닌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려오고.. 끝난 뒤 친구들끼리 모여 다들 교수님을 잔뜩 나무랐다.
학생 라운지에 준비된 도넛으로 성난 마음을 진정시켰고,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내 Big sib이 준비해준 스타벅스 기프티콘과 사탕처럼 생긴 케이크로 기분이 완전 풀렸다!
Genes는 훨씬 낫기를 바라며..
Day 2 — 9월 29일 (화) · Genes 개강!
오늘은 좀 바쁜 날이었다. 오후 세시에 랩을 퇴근하고, 마쳐야 할 일이 많았다. 맞다, 바로 그 날이다. 시계를 수령하는 날!
내친김에 거실을 완성하기 위해 한시간 거리에 있는 Frisco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나서, 한국인 동생과 함께 맛있는 저녁!
시작은 순조로웠다. Robbins Jewerly, 벌써 몇번째 오는 곳인지 모르겠다. 주문한지 무려 2주나 걸려서 겨우 시계를 받게 되었고, 왠지 웨이팅이 긴 식당에서 먹는 음식은 맛있어야 하는 것처럼 내 손에 올라간 시계는 완전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나서 거실 테이블을 구매하러 Frisco. 가면서도 기껏 테이블 하나를 사기 위해 한시간 거리를 가는게 맞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입구에서 맞이해준 해골 가족이 너무 귀여웠다.
무엇보다 상태가 너무 좋았고, 그리고 크기도 완전 거실에 찰떡이었다. 리프트 업 가능한 테이블을 찾고 있었는데, 완전 부드럽지는 않지만 꽤나 준수했다. 그리고 둥그런 테이블이면 향후에 손님을 초대했을 때 둘러앉기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인 동생과의 저녁! 평소에 이런 얘기를 잘 안하는 동생인데, 어느날 갑자기 내게 트레이더 조에 함께 가달라고 했다. 차가 없어서 라이드를 부탁하나? 내가 번거로울까봐 항상 걱정부터 앞섰던 동생이라 뭔가 미심쩍었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에 고마운 일이 많았다며 갑자기 저녁을 사버렸다;; 말릴새도 없이..
우리가 갔던 곳은 베트남 음식점인데, 뭔가 묘한 아메리칸의 분위기가 한 스푼, 아니 실수로 정량보다 조금 더 쏟아넣어버린듯한 느낌이었다. 식당 분위기도 엄청 격식있었고, 메뉴 하나하나 퀄리티가 예사롭지 않았다. 팟타이 소스에 튀긴 윙봉이 기억에 남는데, 팟타이 소스가 약간 재해석된 느낌이긴 했지만 근래 먹었던 치킨중에 가장 맛있었다.
다음에는 내가 맛있는 걸 한번 사먹여야 겠다. 여러모로 고마운 동생이다! 11월 말에 워싱턴 디시에 있는 사촌 누나네에 함께 놀러가기로 했는데,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Day 3 — 9월 30일 (수) · 한국 친구들과 Hang out!
역시 시험이 끝나면 놀아야지. 지난번 부터 벼르고 있었던 타코집을 부수러가자는 콜이 있었고, 시험 끝난 직후가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이번주는 텍사스답지 못한 날씨가 예정되어 있었다. 바로 폭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결국 비가 너무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 소식에, 타코는 한 수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하지 않겠는가? 새로 산 테이블의 위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과감히 집으로 초대했다.
당연히 집에서 시켜먹을 줄 알았는데, 고마운 친구들은 또 집을 치울 시간을 줘야한다며.. 한국 치킨집에 가서 포장해오겠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남은 치킨을 먹다가 알았는데, 이 녀석들 다리와 날개만 남기고 갔다; 무한 감동이다..)
아무튼 그래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UTSW에 계신 HHMI investigator이자 Aging 관련 연구의 대가이신 Joseph Takahashi 교수님 강연을 듣고, 드디어 우편으로 도착한 SSN 카드를 수령한 뒤! 친구들과 맛있는 저녁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Day 4 - 10월 1일 (목) · 국군의 날
유달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점심으로 감자 핫도그와 주먹밥을 먹고, 그리고 어제 만난 한국인 친구가 빌려준 bug killer로 온 집안을 도배했다. (그렇다.. 바선생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오고갔다)
우리 아파트는 실내 주차공간이 없어 차를 외부에 주차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차가 각종 오염물질이나 환경에 노출되어있다.
한 번은 차 앞에 매우 끈적한 액체가 뿌려져 있어 닦아내려고 했는데, 도저히 닦이질 않았고 나무 진액임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아마존에서 몇 가지 세정에 필요한 용품을 구매해서 열심히 지워주었다. 아직 100% 다 지워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가 안나서 대충 살기로 했다.
어제 친구들이 놀러왔을 때, 앞접시와 컵이 없어서 조금 혼란을 빚었는데, 역시 외양간은 소 잃는 아픔이 있어야 고칠 동력이 생기나보다.
Day 5 - 10월 2일 (금) · 실험과 휴식, 뭣이 중헌디
오늘부터 약 4일간, 그러니까 다음주 월요일까지 내 Supervisor가 랩에 없다.
Galla라고, Rich들을 행사에 초대해서 연구 내용을 발표하고, donation을 유치하는 행사가 있는데 (나도 처음 알게된 문화이다.. 한국에도 이런게 있으려나?) LA에서 열린다고 해서 오늘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래도 자기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을 해야할 지에 대한 고민은 함께 나눴고, 곧바로 실험에 착수했다. 다만, 평소보다 훨씬 어려운 디테일로 실험을 설계했기 때문에 조금 더 높은 집중력을 요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다른 포닥과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아 정리해두려고 한다.
내가 어쩌다 한번씩 주말에 갈때마다 그가 항상 있었기에 궁금했다. 주말에 나오는 걸 좋아하냐?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본인도 박사과정생일때는 주말에 절대 나오지 않았다고.
박사과정은 매우 길고 어렵다고, 그렇기 때문에 더 work-life balance를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그리고 학교에 나오는 그 시간동안 최대한 집중해서, 아주 효율적으로 실험을 설계해서 성과를 내는게 중요하다고 일러줬다.
이 랩의 최대 장점은, 이렇게 좋은 포닥들과 좋은 동료들이 어딜가나 있다는 점이다.
…
아무튼 그렇게 실험 중간에 짬내서 점심을 먹고, 또 다음주 10월 6일, 7일 양일간 진행되는 아마존 프라임데이 때 스탠모어3를 살지 고민을 잠깐 해준 뒤에, 실험을 모두 마치고 측정 기기가 돌아가는 한시간하고도 삼십분동안 짧은 work-out을 다녀왔다가 저녁은 대패삼겹살을 구워먹었다는 이야기.
MD Student Center라는 곳에서 work-out을 주로 하는데, 로비가 너무 예쁘게 꾸며져 있어서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새로 산 리프트업 테이블과 티비의 조합은 예술이다.
Day 6 - 10월 3일(토) · 나도 드디어 신용인?!
드디어 그 날이다. 서류 지옥의 마지막 관문, 신용카드.
이 날이 오기까지 얼마나 기다렸던가. SSN을 신청한지도 거의 한 달이 지났고, 미국에 온지는 이미 두 달을 넘기고 있었다.
체이스 은행에서 만들 수 있는 신용카드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나같은 이방인(신용제로)이 만들 수 있는 신용카드는 무지 제한적이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먼저 SSN을 받은 친구들은 체이스 프리덤 라이즈라는 가장 기본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
이때만 해도 마음이 급해서, 나도 같은 카드를 발급 받으려고 생각중이었다. 허나, 급할수록 돌아가는 법. 어쩌면 시간이 더 지난만큼, 한 단계 높은 신용카드를 발급 받을 만큼 이력이 쌓이진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프리덤 라이즈보다 높은 언리미티드를 신청해보게 되었다.
결과는 대성공! 신청한 즉시 신용카드가 발급되었고, 나도 이제 신용인이 되었다! 이걸로 열심히 Credit Game에 참여해서 좋은 Credit을 쌓아야겠다.
그리고, 2년 뒤 PhD candidate가 되기 위한 관문인 Qualifying exam을 통과할 때 쯤이면 좋은 Credit으로 테슬라 모델Y 할부를 지를 수 있을까? (물론 생각만 해보는거다)
시계를 받은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처음으로 받았던 시계줄에 얼룩이 생겨버렸다. 애초에 조금 길기도 해서, 항상 끝을 접어 넣어야 했는데 그게 조금 불편했다. 그 덕분에 시계가 조금 못생겨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대안을 찾고 싶었다.
엄청난 구글링덕에 찾아낸 방법 한 가지는, 구글 핏빗에어였다. 그런 용도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픽스드 러그인 시계에 호환되면서 또 그리고 내 건강 정보를 모니터링 해줄 수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괜찮은 선택지였다.
나는 당장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았고, 아마존 배송은 거의 이주일씩 걸렸다. 다행히 근처 타겟에서 온라인 주문 후 픽업이 가능했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내 손목은 얇았고,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더군다나 핏빗에어 자체 역시도 측정이 다소 부정확하다는 후기가 많았기에 미련없이 반품해버렸다.
그리고, 다음주면 한국에서 첫 손님이 온다. 그것이 내가 집 세팅을 서둘렀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갑작스레 티비를 사고, 그리고 또 거실 책상을 산 것. 물론 나를 위해서 산거긴 하지만, 왠지 먼 거리에서 손님이 온다고 하니까 조금 더 잘 갖춰진 상태로 그를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서 몇 가지 더 필요한 주방 용품들을 구비하기 위해 이케아에 들렀다.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정말 딱 필요한 최소한의 그릇과 식기류만 사서, 매끼니마다 먹고 정리하곤 했는데 이게 조금 투머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하루 두 끼 정도는 커버할 수 있는 정도로 식기류를 늘렸고, 친구들이 왔을 때 간단히 내어줄 수 있는 앞접시와 유리컵 등을 샀다.
그리고 흐마트(H-mart, 한인 마트이다)에 가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샀다. 한국에서 놀러오는 형은 다음주 월요일 저녁에 와서, 수요일 아침 일찍 떠나는 일정이라, 최대한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
수업 때 항상 같이 앉는 일본인 친구도 소개시켜주기로 해서, 함께 텍사스 바베큐를 먹고, 집으로 초대해서 이것저것 먹일 계획이다.
Day 7 - 10월 4일(일) · Katy Trail Run
이번주 내내 비가 와서 그런지, 텍사스의 열기가 한 풀 식었다.
날씨가 선선했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젖은 땅이 뛰기에 적절하지 않을까봐 걱정도 앞섰지만, 나가서 뛰어보기로 했다.
언젠가 가봐야하지 하고 날씨탓을 하며 항상 미뤘던 katy trail에 가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뛰는동안 경치가 너무 좋아서, 뛰는 데에 집중하지 못하고 경치 구경을 했다.
20분 정도 뛰고, 나머지 40분 정도는 걸으며 이것저것 잡생각을 정리했는데, 피톤치드도 잔뜩 맡으면서 머리가 한 번 리프레쉬되니까 최고의 휴식이었다. 앞으로 종종 뛸 기회를 만들어야지.
미국에 온지 9주차, 어떻게 보면 아주 순조로운 일주일이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9월 30일 화요일에, 내가 SSN 카드를 재발급 하기 위해 SSA 오피스에 간 것이었다.
사정이 무엇이었냐 하면, SSN 카드는 신청 후 2주일 내로 우편으로 받지 못하는 경우에 다시 신청을 해야한다는 내용이 Receipt에 쓰여 있었고,
나는 무려 4주나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다시 신청하러 간 것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재신청을 한 다음날인 10월 1일 수요일에 우편으로 받은 것이었다. 하루만 더 기다릴 걸..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어쩔 수 없었다.
이 때의 나는 새로 신청한 SSN 카드를 받기 위해 계속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어차피 새로 신청한 카드도 동일한 번호로 발급되기 때문에, 이전 우편물의 SSN 번호도 유효하다는 것! (이것도 토요일에 신용카드 신청하기 직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잘 해결된 일이었지만, 그러나 미국 행정의 쓴 맛에 아주 치명타가 터져 영 기분이 좋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성공적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는 감동적인 결말이다.
미국은 내가 가진 것보다 조금 더 강력한 인내심을 요하는 곳인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