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1주차 — 미국에서 맞이하는 생일

Living in US
Life in Dallas
생일 기념 Texas State Fair와 근사한 저녁식사, 예상치 못한 선물까지.
Published

18 Oct 2026

11주차. 내가 이번주에 시험을 봤던가?

지난 기록들을 정리하며 다시 한번 놀랐다.

그와 별개로, 이 기록을 시작한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돌이켜봤을 때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Day 1 — 10월 12일 (월) · Genes Exam 1

이번주는 드디어 첫번째 로테이션이 끝나는 한 주였다. 그렇기 때문에, 첫번째 로테이션의 마지막 날인 금주 금요일에는 Rotation Wrap-up talk가 예정되어 있어 발표 준비에 꽤나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Genes는 개강한 지 2주일만에 첫번째 시험을 치뤄야했다.

…

시험 난이도는 사실 굉장히 쉬웠다. 과거 족보 문제들만 잘 숙지했다면 어려움없이 풀이가 가능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서, 연구실로 향했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첫번째 로테이션을 끝내고, 다음 연구실로 향하기 전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었을테다.

나의 경우는 달랐다. 나는 어떻게든 이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내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 로테이션 모두 이 연구실 내에 다른 교수님 아래에서 하는 방식을 택했다.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모르지만 나의 확고한 의지를 랩에 피력하는데에는 유효했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시험 끝난 기념 간단하게 커피를 한잔 테이크아웃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미뤄두었던 Claude Max 플랜을 결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제 이후에 계속해서 민감 정보라며 프로세싱이 불가하다는 메시지에 지쳐 곧바로 환불했지만 말이다.

아직은 이른 것 같다. 내가 조금 더 AI에 효용을 느끼고, 토큰이 부족함을 느낀 이후 플랜을 업그레이드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 또 결국 미루게 되려나?

Day 2 — 10월 13일 (화) · 가을은 쇼핑의 계절

가을, 하면 쇼핑 아니겠는가? 텍사스는 바야흐로 드디어 여름 날씨에서 벗어나 제법 선선한 가을의 행태를 띄고 있었고,

나는 그 즉시 지름신이 강림했다.

예전부터 Barbour 코트가 갖고 싶어 marketplace를 뒤적거리다가, 상태가 괜찮아보이는 코트가 있어 연락을 했다가, 같은 판매자가 파는 다른 RRL 웨스턴 플란넬 셔츠도 너무 갖고 싶었던 제품이라 함께 구매하겠다고 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수업을 듣고,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다 퇴근을 하고 난 이후의 이야기이다.

…

아무튼 그래서, 옷을 사기 위해 Richardson이라는 차로 4-50분 거리의 동네까지 이동했다.

판매자는 멋진 수염을 기르고 있는 분이셨고, 처음에 영어로 막 대화를 하다가 갑작스레 ‘한국분이세요?’ 라고 하셔서 놀랐다.

사실 그 이름에서 어느정도 짐작을 하고는 있었는데, 너무 영어가 유창하셔서 한국말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반갑게 한국어로 막 대화하다가, 다음에 또 RRL 제품을 판매하게 되시면 가장 먼저 연락을 주시겠다는 얘기와 함께 옷을 구매했다. 근데 상태가 너무너무 좋아서 정말 잘 산것 같다.

그리고 근처에 최애 버거집 Chick-pil-A를 갔는데, 어찌나 바삭하고 맛있던지, 아니 모든 칙필레가 같은 칙필레가 절대 아니다. (지점-바이-지점이 가장 심하다)

그리고 가게 바로 앞에 굉장히 멋있어보이는 공원이 있어서 배도 꺼트릴 겸 공원을 한바퀴 산책했다.

이 곳은 꽤나 살기 좋아보이는 동네였다. 칙필레 가게 안에도 가족 단위 손님이 정말 많았고, 공원도 너무 잘 조성이 되어 있어 다음에는 뛰러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역시 어디서 사는지가 삶의 굉장히 큰 부분을 좌우하는 것 같다.

Day 3 — 10월 14일 (수) · Red Wing

미국 패션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에서 출발한다.

  • 어디에서 시작됐나? 대학, 노동 현장, 군대, 서부, 스포츠, 거리 등
  • 어떤 디자인 특징이 있나? 소재, 실루엣, 색상, 디테일 등
  • 현대에 어떻게 해석되나? 클래식, 아메카지, 헤리티지, 스트릿 등

내가 관심 있는 건 아메리칸 헤리티지, 그리고 컨템포러리 스트릿웨어를 섞은, 쉽게 말하자면 편안하면서도 기능을 제공하고 또 역사와 정통이 있는 그런 옷들이다.

가령, RRL의 플란넬 셔츠는 폴로라는 역사적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담고 있는 한편 전통적인 남방으로서의 기능과 편연함에 뒤지지 않고, 또 바버의 비데일 코트는 영국의 헤리티지를 담으면서도 승마용 옷으로 개발되어 그 기능성이 공존하는 옷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스투시같은 브랜드도 좋아하는데, 이건 헤리티지로 분류할 수는 없다. 헤리티지는 단순히 브랜드가 오래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의 전통 디자인이나 제작 방식을 계승하는 의미에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투시에서 일부 헤리티지를 표방하는 워크웨어나 빈티지 스타일 제품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패션의 세계는 복잡하다.

…

각설하고, 옷장 상태를 보았을 때 적당히 같이 신을 구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생각했던 Red wing 구두를 하나 사면 어떨까 해서 매장에 방문했다.

그러나 내가 찾고 있던 8111 제품은 매장에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AI가 만들어준 조합을 보면 8111이 찰떡이었다!)

그래도 직원이 당장 급한게 아니라면 블랙 프라이데이나 땡스기빙까지 기다려보라고 알려줬다. 큰 세일이 있을거라면서 말이다.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 남은 일정인 장을 보러 일본인 친구와 함께 H-mart로 향했다. 열심히 장을 보고, 저녁은 맛있는 설렁탕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파김치와 양파 장아찌가 예술이었다.

Day 4 - 10월 15일 (목) · 생일 기념 Texas State Fair!

정확히는 생일을 기념해서 방문한 건 아니었다. 사태는 이랬다.

원래 10월 8일 지난주 목요일에 랩에서 다같이 Texas state fair를 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 날에 다른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한 주를 미루게 되었는데 우연히 내 생일이었다!

맞다. 사실 옷을 급하게 샀던 것도 이 날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Texas State Fair에 톤앤 매너를 지킬 수 있는 웨스턴 플란넬 셔츠를 샀던 것이었고, 아쉽게 가죽 구두는 구비하지 못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착장으로 축제에 참여했다.

입구부터 텍사스를 상징하는 듯한 거대한 인형이 우리를 맞이했다. 평일 낮시간대라 꽤나 한산했고, 다같이 본격적으로 Texas state fair를 즐겼다!

시작은 간단한 Piggy Race였다. 귀여운 아기돼지들이 경주를 하는데, 각 코너마다 1/2/3/4가 배정되어 해당 번호의 돼지를 응원하는 이벤트였다. 마지막 경주에서 우리 4번 돼지가 가장 먼저 들어와 굉장한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역시 술이 빠질 수 없다. 이 날만 맥주를 세 잔은 마신 것 같다.

그리고 맛있는 콘도그와, 오레오를 튀긴(?) Frided Oreos(미국에선 꽤나 유명하다)를 간식으로 먹고, 여기까지 왔는데 놀이기구를 하나 타야지! 하면서 다같이 크라켄이라는 기구를 탔다.

사진 상으로는 굉장히 낮아 보이는데 실제로는 90도 이상으로 높이 올라가는 미친 난이도의 놀이기구였다. 타고 나서 먹었던 콘도그가 올라오는 줄 알았다..

그리고 다들 집에 가기 직전 쯤 애들(연구실 사람들)에게 고백했다. 사실 오늘 내 생일이었다고 말이다!

왜 이제서야 말했냐며, 다들 한마음으로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덕분에 정말정말 최고의 생일을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집에 오니 못보던 편지가 와 있었다. 여자친구가 한국에서 보낸 편지였다.

항상 멀리서도 응원해주고, 선물사주고, 편지까지 보내주다니 나에게 참 귀한 사람이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Day 5 - 10월 16일 (금) · 생일 기념 저녁!

응당 생일이라는 것이 하루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오늘 Rotation talk가 예정되어 있어서 마냥 편한 마음으로 놀지 못했는데, 드디어 그 발표까지 마치고 나니 마음이 너무너무 편안했다.

그리고 많은 질문과 관심, 격려를 받아 두 달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한 보람을 느낀 시간이었다. 한번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더욱 연구에 정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실 발표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면 안할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얻어가는 것이 없을 것 같아 당당히 정면돌파를 선택했고, 며칠동안 후회스럽기는 했지만 발표를 마친 순간에는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할 지 하지말지에 대한 고민이 들면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말이다.

…

어쨌든 성공적으로(?) 발표까지 마치고, 한국 친구들과 다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게되었다.

바삭한 어니언링, 셰비체와 함께 근사한 스테이크, 와인을 곁들인 최고의 저녁이었다. 생일이라고 케익을 꼭 먹어야 된다며, 마지막 디저트로 조각 케익까지 완벽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요즘 향수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조말론의 룸 스프레이와 양키캔들을 선물로 준비해줬다.

덕분에 집에서도 포근하고 근사한 향 속에서 지낼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했다. 선물에 이어 저녁도 자기네들끼리 내겠다는 친구들이었다.

이 모임의 다음 생일자는 더 좋은 기억으로 되돌려 줄 수 있으면 좋겠다.

Day 6 - 10월 17일(토) · 텍사스에도 가을은 온다

텍사스에 도착한 이후로 최고의 날씨였다. 선선한 바람, 야외활동하기 최적의, 가을이었다.

곧바로 미뤄두었던 야외 런닝을 하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했다. Katy Trail을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앞으로 날이 좋을때마다 부지런히 뛰러 다녀야겠다.

“Happiness is not a destination but a way of traveling”, Caroline Rose Hunt Trail을 뛰는데 옆에 이런 문구와 조형물이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미국에 오니 쉼과 여유, 그리고 그 쉼과 여유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세차 이후에, haircut을 위해 캐롤튼으로 향했다. Wish hair에서 지난 커트가 굉장히 만족스러워서, 재방문했고 역시 성공적이었다.

어떤 서비스를 받던 무조건 음료를 내어주시는데, 커피가 제법 맛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여기로 계속해서 다녀야겠다.

그리고 외출! 사실 이번 코호트(내 동기들)에는 한국인이 무려 총 7명이나 있다.

2세를 제외하면 6명, 그리고 그 중 1명은 분과가 아예 달라서 접점이 잘 없고 남은 5명 중 4명이서 거의 매주 혹은 격주로 놀러다니는 셈이다.

오늘은 그 나머지 한명을 포함한 5명이서 같이 저녁으로 K-BBQ를 먹기로 했다. 저녁을 먹기 전, 항상 같이 노는 친구들 네명이서 근처 호수에 놀러갔다.

텍사스에 호수가 왠말인가. 역시나 인공 호수였지만 경치만큼은 끝내줬다. 가족단위로도 많이 놀러와서 고기를 구워먹는 명소인 것 같았다.

그렇게 호수를 구경하고 나서, 근처에 낚시 용품점이 크게 있어서 다같이 구경했다.

나는 낚시를 아주 어릴 때 단 한번밖에 안해봐서 잘 몰랐는데, 낚시에 관심 있는 친구가 두 명이 있어서 다음에 다같이 낚시를 하러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새로운 건 환영이다!

그리고 맛있는 K-BBQ. 사실 텍사스에서 먹는다는 기준으로 괜찮았던 거지, 한국 기준으로는 그렇게까지 맛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후식으로 somisomi에서 간단한 붕어 아이스크림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Day 7 - 10월 18일(일) · 상수의 시간

로테이션이 끝나고, 많은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았다.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또 다음주부터는 새로운 로테이션이 시작한다. 그리고 생일은 일년에 한번뿐이다. 다시 나로 돌아가야한다!

부지런히 밀렸던 빨래와 청소를 하고, 선선한 날씨를 뒤로 한채 헬스장으로 향했다. (와중에 항상 student center는 아주 이쁘게 꾸며져있었다)

그렇게 이번 한 주를 마무리했다.

미국에 온지 11주차,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생일을 맞았다.

걱정했던게 무색할 만큼 행복한 생일을 보냈다. 걱정했던 Rotation talk도 잘 마무리했고,

모든 걱정은 기우로 돌아갔다.

옛날에는 걱정이 많아 쉽게 불안해지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생각이 많았는데, 지금은 박사과정 그 자체에 몰입하다 보니 그 외의 것들에 별로 개의치 않게 된다.

지금 목표는 오로지 박사과정을 무사히 잘 끝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 하루로 구성된, 한 주의 이야기들로 채워나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그 어느새 끝에 도착해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을 더 알차게, 많은 것들을 누리며 배워야겠다.